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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역사 문화 (근대역사박물관, 신흥동, 이성당)

by 코스모스1-탱고 2025.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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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암철길마을
경암철길마을

군산, 시간이 멈춘 도시를 걷다

누군가는 군산을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는 도시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근대 건축의 보고이자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감성 도시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군산은 그보다 훨씬 섬세하고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도시는 과거의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그것을 문화로 품고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은 군산에서 내가 걸었던 길, 바라본 건물, 그리고 맛본 음식과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하루가 아니라 며칠을 걸어야 겨우 그 정서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도시.
그 오래된 풍경 속에서, 우리는 모두 잠시 멈추는 법을 배우게 된다.

1.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 항구 도시의 시간 위를 걷다

여행의 시작은 늘 가장 상징적인 곳에서 시작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군산에 도착하자마자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해망로 끝, 군산항이 바라보이는 그곳에는 1900년대 초반 군산이 어떤 도시였는지가 잘 정리되어 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맞이하는 것은 커다란 포스터와 나무로 된 천장,
그리고 군산항 개항 당시의 모습을 정교하게 재현한 모형들이다.
군산은 개항 이후 쌀 수탈의 중심지가 되면서 급격한 근대화를 경험한 도시였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중심에서 탄생한 항만과 철도, 은행과 창고.
이 도시엔 아픈 역사가 박제되지 않고, 살아 숨 쉬는 형태로 남아 있다.
근대역사박물관의 전시는 단순히 과거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감정과 일상을 세심하게 담아낸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군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로 구성한 섹션이다.
당시 농민과 어민, 상인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시대 여성의 생활상이 어땠는지까지 전시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오면 바로 옆에 있는 근대미술관(구 일본18은행 군산지점)
구 조선은행, 구 세관 본관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건축물 하나하나가 박물관과 이어진 듯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을 걷는 동안, 나는 군산이 단지 ‘관광지’가 아닌,
‘살아 있는 역사서’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2. 신흥동 일본식 가옥과 초원사진관 – 시대의 경계에 선 골목

군산의 매력은 단지 큰 건물이나 박물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 도시의 진짜 얼굴은 골목에 있다.
나는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도보로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 있는 마을로 향했다.

군산에는 아직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거주지로 쓰였던 전통 일본식 목조 가옥이 남아 있다.
대부분은 복원되었거나, 박물관처럼 운영되고 있지만 몇몇은 여전히 사람이 살기도 한다.

특히 잘 보존된 히로쓰 가옥(구 히로쓰 가네마쓰 저택)
이국적인 정원과 격자무늬 창틀,
그리고 짧은 현관과 미닫이 문까지 옛 일본의 중산층 주택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이곳을 걷고 있으면 묘한 감정이 인다.
아름답다는 생각과 함께, 그 안에 담긴 지배와 수탈의 기억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산은 그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기억한다.
그 방식이 이 도시를 진정한 역사 도시로 만들어준다.

가옥을 나와 조금만 걸으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로 유명한 초원사진관이 나온다.
나 역시 이 영화를 사랑했던 사람 중 한 명으로,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이곳에서 가슴이 뭉클했다.

사진관 내부는 영화 속 세트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고,
작은 TV에서는 한 장면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그 공간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군산은 그렇게, 영화처럼 우리를 멈추게 한다.

3. 군산 음식 – 이성당, 군산짬뽕, 복성루

군산은 먹을 것도 참 풍부한 도시다.
그리고 그 음식들 속에도 도시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첫 번째는 너무나 유명한 이성당.
1920년대에 문을 연 이 빵집은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제과점으로 알려져 있다.
오전 10시에 방문했는데도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앙금빵야채빵.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데, 무엇보다 맛이 '정직하다'.
요란하지 않고, 인위적이지 않고, 옛날 동네 빵집의 감성이 그대로 담겨 있다.

두 번째는 군산짬뽕.
원조격인 복성루는 언제 가도 웨이팅이 있다.
하지만 기다릴 가치가 충분하다.
이곳 짬뽕의 특징은 국물이 맑고 불맛이 은은하게 배어 있으며,
해물이 정말 푸짐하게 들어간다.

기계로 뽑지 않은 손면은 면 자체의 탄력이 살아 있고,
짬뽕이 이렇게 담백할 수 있구나 싶은 맛이다.
단순히 맛있는 것을 넘어서 ‘군산식’이라는 정체성을 만든 음식이다.

그 외에도 간장게장, 해물탕, 젓갈, 그리고 복고풍 다방 카페까지.
군산은 시간을 품은 도시이면서도 입 안 가득 추억을 퍼올리는 도시이기도 하다.
여행은 결국, 입맛과 기억을 동시에 자극할 때 완성되는 것 같다.

결론: 군산, 기억의 도시에서 사람의 도시로

군산은 묵직하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낡은 도시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이야기, 아픈 시간, 아름다운 재생, 그리고 그걸 지켜내는 손길들이 담겨 있다.

관광지를 넘어서, 이곳은 나에게 ‘기억하는 법’을 알려준 도시였다.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군산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다음엔 군산의 바닷길을 걸어보리라.
금강하구둑에서 해넘이를 보고,
동국사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그 골목에 숨겨진 책방 하나에서 다시 하루를 시작하리라.

군산은 다시 오고 싶은 도시다.
그리움이 남는 곳이란, 늘 사람을 다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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