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매력은 꼭 유명한 관광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마을들, 관광객보다 주민이 더 많은 조용한 길. 그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람보다 느리고, 삶의 냄새가 묻어나는 풍경을 만나게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주 속 숨은 마을 3곳을 중심으로, 그 마을을 관통하는 올레길과 삶의 흔적이 묻은 공간들을 함께 소개합니다. 속도를 줄이고, 마음을 여는 걷기 여행을 시작해보세요.
종달리 마을과 올레 1코스 – 바다와 함께 숨 쉬는 마을
종달리는 제주 동부, 성산읍에 위치한 작은 어촌 마을입니다. 성산일출봉과 광치기해변에서 멀지 않지만, 관광지의 화려함과는 다른 조용한 분위기를 간직한 마을이죠. 이 마을은 올레 1코스의 중반부에 위치해 있어, 바다와 마을, 오름이 어우러진 걷기 코스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종달리의 아침은 빠릅니다. 해녀들이 해안에 모여 오늘 나갈 바다 이야기를 나누고, 마을 어르신들은 조용히 밭으로 향합니다. 골목길은 바람과 햇살이 쓸고 지나가고, 담벼락 너머로 고양이 한 마리가 꾸벅이며 인사를 합니다. 길을 걷는 당신도, 어느새 이 마을의 일상이 된 듯한 착각이 듭니다.
1코스를 따라 걷다 보면 바닷가를 끼고 이어지는 길이 시작됩니다.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소리, 갯벌 위에 앉은 백로들, 해조류 냄새… 모두 이 길의 일부입니다. 종달리에는 작은 카페와 쉼터도 몇 곳 있어 걷다 잠시 멈춰 쉬기에도 좋습니다. 특히 '종달리해녀카페'에서는 해녀들이 직접 만든 감귤차나 톳주먹밥을 맛볼 수 있어 여행의 감성을 더해줍니다.
이 마을의 진가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골목을 지나다 마주치는 주민의 “어디서 왔수과?”라는 인사는, 도시의 “안녕하세요”보다 훨씬 더 따뜻하게 느껴지죠. 제주 올레길은 이런 곳을 지나야, 그 진짜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종달리는 그래서 '잠깐 스쳐 가는 곳'이 아니라, '잠시 멈추고 싶은 곳'입니다.
하가리 마을과 올레 14코스 – 오름과 숲이 지키는 마을
하가리는 제주시 한경면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입니다. 이곳은 올레 14코스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으며, 걷는 내내 숲과 오름, 마을이 순환하듯 이어지는 자연 속 마을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외지인보다 마을 사람들이 주인공인 길이라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하가리 마을에 들어서면, 제주의 전형적인 중산간 분위기가 펼쳐집니다. 화산석으로 만든 낮은 돌담, 고즈넉한 돌집, 넓은 밭과 뒤편에 솟아있는 오름의 윤곽. 마을 앞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탁 트이지만, 동시에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혀줍니다.
14코스를 걷다 보면 하가리 숲길로 이어지는데, 이 길은 사계절 모두 다른 표정을 짓습니다. 봄엔 초록빛이 생생하고, 여름에는 짙은 숲 내음이 공기를 채우며, 가을에는 붉은 억새가 흐드러지고, 겨울엔 고요 속 따뜻함이 남습니다. 하가리 오름은 높지 않지만 걷는 이에게 숨을 고르게 해주고, 올라서면 마을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을 선물하죠.
이 마을에서 꼭 들러야 할 곳 중 하나는 ‘하가리 커뮤니티 카페’입니다. 이곳은 마을 주민들이 함께 운영하며, 제철 채소를 활용한 간식이나 감귤차, 수제 쑥떡 등을 제공합니다. 여행자와 마을 사람이 함께 마주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단순한 카페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하가리를 걷다 보면 문득문득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마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을의 풍경이 그렇고, 사람들의 눈빛이 그렇습니다. 걸음도 말도 느려지는 그곳에서, 우리는 바쁜 일상 속 놓치고 있던 ‘느낌’들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도두봉 마을과 올레 17코스 – 바다 위 오름과 삶의 무게
제주시 도두동에 위치한 도두봉 마을은 도시 속에 있으면서도 고즈넉한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공항에서 불과 10분 거리지만, 골목 하나를 돌면 다른 시간대의 제주를 마주하게 되죠. 이곳은 올레 17코스의 일부로, 걷기 코스와 바닷길, 오름과 마을이 밀도 있게 이어지는 코스입니다.
도두봉은 높지 않은 오름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제주시 전경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자랑합니다. 아침이나 노을 무렵에 오르면, 햇빛과 바다가 뒤섞이며 만들어내는 색감이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됩니다. 하지만 이 마을이 특별한 이유는 그 풍경 너머에 있는 삶의 흔적들 때문입니다.
도두항에서부터 이어지는 골목길을 걷다 보면, 오래된 양철 지붕 집들과 폐가 옆에 핀 들꽃, 벽에 붙은 해녀 사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관광지로 꾸며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제주’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골목, 조용히 마당을 쓸고 있는 할머니, 그리고 길가에 앉아 쉬는 어르신들. 모두가 이 마을의 주인공입니다.
도두봉 아래에는 ‘도두 커피박물관’이라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유독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 그리고 마을 풍경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빠져나온 느낌을 줍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 순간, 이 마을이 전하는 메시지를 듣게 되죠. “여기는 느리게 살아도 괜찮은 곳이다.”
제주의 마을을 걷는다는 것은, 제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에 가까운 경험입니다. 종달리의 바다, 하가리의 숲, 도두봉의 오름과 골목. 이 세 곳은 관광지보다 사람을, 유명한 뷰포인트보다 삶의 흔적을 중심에 둔 장소들입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그 길을 걷고, 누군가는 그 마을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당신의 걸음이 그 일상의 일부가 되는 순간, 여행은 훨씬 더 깊고 따뜻한 것이 됩니다.